최승자 시집
이 시대의 사랑
1952년 충남 연기 출생으로 고려대학교 독문과 수학 - 1979년 계간<문학과 지성>에서‘이 시대의 사랑’으로 등단했으며 즐거운 일기, 기억의 집, 내 무덤 푸르고, 연인들, 쓸쓸해서 머나먼, 물위에 씌어진, 빈 배처럼 텅 비어, 등이 있다.
최승자의 시는 실연의 고통과 자본주의 질서와 오염된 세상으로부터 도피하여 고독한 자의식에 매몰된 것으로 이해된다. 1980년대 치욕과 공포의 시대를 지나며 부모, 연인과의 불화 속에 염세주의적 삶의 부정이 표출되고 있다. 고려대 교지‘고대문화’편집장으로 활동했다. 유신시대 자신도 알 수 없는 이유로 블랙리스트에 올라 있다가 쫓겨나 학교 선배 정병규가 주간으로 있던‘홍성사’편집부에서 들어간다. 홍성사 퇴사 후 번역 문학가로 활동하며 시 쓰기에 전념한다.
최승자는 80년대 이성복과 함께 한국의 대표시인이었다. 그녀의 고통은 허무로 빠져드는 것을 스스로 느끼며 삶의 의지와는 반대로 극한으로 치닫는 쓸쓸함과 외로움이었다. 그녀의 시에는 실연과 낙태 혹은 사산, 무책임하고 타락했으며 권력을 휘두르는 아버지들이 있다. 최승자의 시를 떠받치고 있는 것은 파괴에 대한열정으로 충만한 독기와 죽지 못하고 누추한 삶을 이어가는데 대한 풍자와 욕설이다.
‘나’는 인생을 똥으로 만들어 버린 모든 아버지들을 부정한다. 시인은 죽은 아버지도, 살아있는 아버지도, 하나님 아버지도 아닌 어떤 투사보다 강렬하게 우리 삶에 권력을 휘두르던 독재자들을 비판하고 부정한다,
골수까지 절망하면서도 퇴폐까지 도달하지 못하고 세상을 향한 저주를 퍼부으면서도 내면에는 희망이 꿈틀거린다.
☆적나라하고 섬뜩한 詩어 들을 읽으며 쇼크를 받았다. 독설과 야유 절망의 언어들에 놀라 눈을 뗄 수가 없어 끝까지 읽었다. 참을 수 없는 감정의 폭발을 시로 쓰며 스스로를 치유하고 타자에 대한 응어리를 풀어내는 시인은 어떤 사람일까?
최승자 시인과 조선일보 선임기자, 최보식 <인터뷰 요약>
“어떤 강박감에 사로잡혀 환청이 들리고 내가 헛소리를 마구 내뱉고 있었어요. 소주 말고는 음식물을 먹을 수가 없었어요. 서울의 친척집에서 지냈는데 나의 이상한 모습을 남들에게 보이기 싫었어요. 99년부터 친척집을 나와 고시원과 여관방을 떠돌았어요.”
-시인 최승자의 목소리에서는 쇳소리가 났다. 가죽만 붙은 얼굴과 쑥 파인 눈 마른 막대기 같은 몸은 149cm 키에 체중은 34kg이었다.
“지인들은 마음만 먹으면 치료할 수 있지 않느냐고 했으며 모 출판사에서는 사무실 안에 작품을 쓸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주기도 했어요. 하지만 몸과 마음이 무너져 자신을 통제할 수가 없었어요.”
-시를 쓰던 당신이 폐인처럼 된 이유가 있나요.?
“언제부터인가 노장(老莊)사상, 명리학, 사상의학, 점성술 같은 신비주의 공부에 빠졌습니다. 현실세계를 뛰어넘는 세상을 쫓으며 답을 찾기 어려웠어요. 한때 문학은 대단해 보였으나 시시해졌으며 시를 쓸수록 동어반복이 됐습니다. 이미 세상을 다 봤다는 느낌이었고, 나고 죽는 것, 사회체제와 문명도 허망하여 이를 초월하는 어떤 세계로 끌려갔어요. 1994년 아이오와대학 초청으로 4개월간 미국에서 점성술을 접한 것도 계기가 됐어요. 문단에 나오기 전부터 허무를 느끼며 책속의 숱한 인물의 삶과 죽음이 내면화되었습니다.
-신비주의로 가면‘나고 멸하는’한계성을 극복하고 영생할까요?
“내가 그렇게 되고 싶은 것이 아니라 차원이 다른 그 세계가 매력적이었고 스스로 풀 수가 없었어요. 그것을 추구하다 병들어 멈추었으며 이번 시집의 제목처럼‘쓸쓸해서 머나먼’입니다. 허무와 절망은 내 운명이었어요. 문학은 슬픔의 축적이지, 즐거움의 축적은 아니거든요. 젊은 날에는 무의식적, 충동적으로, 비명처럼 시를 썼어요. 세상이 따뜻하고 정상적으로 보이면 시를 못 쓰게 되지요. 그건 보통사람의 세상으로 들어가는 것이니까요.
-자신이 폐인처럼 변하는 과정에서 위기의식은 없나요?
“죽으면 시집 다섯 권만 둥둥 떠다니겠지 했어요. 3평 고시원에 있던 나를 막내 외삼촌이 찾아내 병원에 입원시켰어요. 병원에서 규칙적으로 밥 세끼를 먹이고 약을 먹이니 살 것 같았어요. 정신의 문제인데 약을 먹은들 될까? 했으나 밥을 먹으니 괜찮아 졌어요. 그러나 병원만 나오면 먹는 것을 잊어버려요.”
-문제는 몸을 저버린 정신의‘과잉’에 있는 것 같군요.
“정확한 지적입니다. 그러나 내가 추구한 삶이고 선택을 후회하지 않습니다.”
-경제적으로 무능력하고 병들었는데 가정을 꾸렸으면 하는 마음은 없나요?
“없어요. 아이들을 바라보는 것은 좋은데 돌보면서 사는 것은 못해요. 이기적이라고요? 맞아요. 그런 제의는 거부하며 사람들과 어울리는 대신 시장을 한 바퀴 돌며 구경하고 가로수 길을 걷고, 예쁜 아이들을 바라보고, 간혹 버스를 타고서 산을 쳐다보는 것들로 만족합니다.”
- 몸이 있어야 정신도 유효하다. 시인은 5년 전부터 기초생활 수급자였다.
☆최승자 시인의 절절한 시를 읽다보면 지나간 세월의 한 순간들이 소환된다.
p19 나의시가 되고 싶지 않은 나의 시 p26 삼십 세 p70 잠들기 전에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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