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리알 유희 / 헤르만 헤세 / 박계수 옮김
♣유리알 유희 주인공 ‘요제프 크네히트’지금으로부터는 200년 후의 인물이며 그의 전기를 400년후 의 사람이 편찬한 형식이라고 한다. 개론과 해설을 먼저 읽고 전반부를 읽어 나가는데 시대 배경이 200년 뒤 미래가 아닌 과거로 돌아간 느낌이었다.
♣유리알 유희- 유사와 대조의 원리에 따라 여러 학문 학예의 경계를 넘나들며 자유롭게 즐긴다. 이데아를 존재로서 파악하는 학문을 응용하여 모든 현상을 음악으로 표시하는 것이 유희의 주안점으로 철학적으로는 현상학을 연상하게 한다. 공식적이고 보편화된 엄격한 규칙을 지닌 세계 언어를 이용하여 정. 반. 합. 에 의해 결론에 이르는 명상 훈련법이며 고도의 영혼 훈련법이다. 유리알 유희는 주인공 요제프 크네히트가 정신에의 헌신과 소명을 체험하며 갈등과 각성 등의 단계를 거쳐 성장하는 과정이다.
‣소명召命의 첫 단계- 라틴어 학교를 다니던 크네히트가 카스탈리엔의 음악 명인에게 인정받아 영재 학교에 추천받으면서 시작된다. 음악에 천부적 재능을 지닌 크네히트와 명인의 영적 교류와 함께 자신의 성장을 자각한다. 부록 짧은 전기 ‘기우사’의 고대 모계사회가 자연에 순응하며 자연의 일부로 살던 시대와 유사하다.
‣소명의 두 번째 단계 – 크네히트는 서서히 외부의 세계와 연결되어 새로운 조화와 긴장이 조성되고 있음을 깨닫는다. 이후 발트첼의 대학에 입학하고 내적 외적으로 사건을 겪으면서 영혼의 갈등이 심화된다.
데시뇨리와 야코부스 신부, 죽림의 노형을 만나며 우정은 단순한 감정적 교류의 차원을 넘어 자연과 정신의 양극성으로 심화되고 바깥세상에 대한 관심이 싹튼다. 역사적 의식을 가지고 현실을 바라보게 된 크네히트에게 카스탈리엔이라는 정신적 공동체 역시 역사적 산물로서 생성과 변화의 흐름 속에 언젠가는 사라질 것이었다.
짧은 전기의 ‘고해신부’ 시기로 수많은 사람들의 패배 상실의 슬픔과 고통의 이야기를 묵묵히 듣고 위로하던 요제프스 파물루스 신부는 지쳐간다.
사람들의 고해의 말을 듣고 비하하는 마음과 극도의 정신적 우울감에 수없이 자살충동을 느끼며 어느 날 그곳을 떠나 산속으로 들어간다.
갈등과 각성의 시대이다.
‣소명의 세 번째 단계 - 카스탈리엔에 한계를 느낀다. 더 높고 큰 정신, 창조적 소명에 봉사하며 도약하기 위한 새로운 출발을 예감한다. 크네히트에게 유리알 유희의 명인은 통과하고 뛰어넘어야 할 공간에 불과했다.
친구 데시뇨리 아들인 티토의 가정교사로, 카스탈리엔을 떠난다. 이틀째 되는 날, 티토의 권유로 별장의 호수에서 수영하다가 익사한다.
세상에서의 원대한 활동이 전개될 것을 기대하는데 돌연한 죽음으로 마무리되어 멍해졌다. 짧은 전기 ‘인도에서의 삶’처럼 현실에서 우리들 인생도 짙은 안개 속에 돌연하고 허망하다.
‘인도의 삶’은 ‘마야유희’와‘ ’인생 일장춘몽’ 삼국유사의 작자미상 ‘조신의 꿈’과 흡사해 놀랐다. 헤세의 글, 에는 꿈이 많이 씌어진다.
‘조신의 꿈, 과 이광수의 꿈, 옥류몽, 옥련몽, 김만중의 구운몽 등, 욕망에 집착하다 꿈을 꾸며 현실의 욕망이 덧없음을 깨닫는다. 인간은 죽음을 앞에두고서야 관점이 바뀐다. 는 말도 떠오른다.
현실에서 갈망하던 것을 꿈에서 이루고 깨어나며 깨달음을 얻게 되는 환몽구조로 자각 각성 깨달음 자연에 귀의로 이어진다.헤세의 할아버지는 인도학자이며 중국의 노장사상에서 헤세 문학은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 단계 ★
모든 꽃들이 시들고 모든 젊음이
나이에 굴복하듯이, 인생 모든 단계, 모든 지혜도, 모든 덕도, 제철에 꽃을 피우지만 영원히 지속되지는 않는다.
인생의 모든 단계마다 마음은
작별과 새로운 시작을 준비해야 한다. 용감하게 슬퍼하지 않으면서 새로운 다른 결합을 위해, 그리고 모든 시작에는 마법이 깃들어 있어 우리를 보호하고 살아가도록 도와준다.
우리는 명랑하게 공간과 공간을 통과해야한다. 어디에도 고향인 것처럼 애착을 느껴서는 안된다. 세계정신은 우리를 구속하고 좁히려 하지 않는다.
우리를 한 단계 한 단계 높이고 확장시키려 한다.
우리가 어느 삶의 범주에 고향처럼 뿌리내리고
친밀하게 적응하는 순간 게으름이 우리를 위협한다.
떠나고 여행할 준비가 되어 있는 자만이 사람을 마비시키는 습관에서 벋어 날 수 있을 것이다. 아마 죽음의 순간도
우리로 하여금 새로운 공간을 맞이하게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우리에게 삶의 부름은 절대 끝나지 않을 것이다.
자, 이제 작별을 고하고 건강하게나, 마음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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